2005 유럽여행 : 9. 7월 25일 : 유대인지구, 프라하 밤거리

9. 7월 25일 : 유대인지구, 프라하 밤거리


전화를 쓰기 위해 내려온 지하철 역. 공중전화.


지하철역 내부



프라하성을 내려와 향한 곳은 유대인지구. 프라하의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그들의 예배당인 시나고그와 유대인묘지가 주요 볼거리이다.

한국인으로서 역사적으로는 유대인과의 인연이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유대인들과 독일의 관계를, 일본의 지배를 받던 20세기초반의 한국의 사정과 비교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지구에는 그 많던 한국인들은 다 어디가고, 유럽인들만 가득했다. 
    유대인지구를 둘러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죽음을 어떻게 떠올릴까?
또 유대인들에 대해 어떤생각을 하며 그들의 흔적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조금은 궁금했다.
나로서는 유대인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측은한 마음, 그 이상의 특별한 감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지구의 골목 입구


유대인지구 제일 가운데에 보이는 스타로나바 시나고그
1270년 무렵에 세워졌으며, 유럽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은 고딕양식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프라하 유대인의 상징으로, 지금도 매일 아침 예배가 열린다.
안에는 유대인들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 공동묘지. 불규칙하게 세워진 수많은 비석들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478-1787년까지의 300년동안 무덤위에 무덤을 세웠고, 땅 밑에 약 12층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묘지 입구 기념관에는 나치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어린이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아이들의 대부분은 나치 수용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림들을 보며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그 아이들은 알고있었을까, 자신들이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생각난다.



유대인지구까지 보고 조금 이른 시각이었지만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유럽에서도 물가가 싸기로 유명한 프라하인데,
이상하게 프라하에서는 밖에서 밥을 사먹은 기억이 없다. 지금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역시 여행 초기의 소심함 때문인지. 좀 아쉽기도 하고.
담에 프라하에 가게 되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야지. (언제 가게될지;)

어쨌든 수퍼마켓에 들어가 엄청나게 많은 샌드위치종류들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 식사를 떼웠다.
평소에 밥보다 빵을 좋아해서 그런지 별다른 불만은 전혀 없었다.


사과가 작은건지 내 손이 큰건지.


프라하 성 아래 노점상에서 구입한 자질구레한;; 물건 들 중 하나. 핸드메이드 커피잔인데.
에스프레소 잔 보단 좀 크고, 커피잔으로 하기엔 작은 애매한 크기.
지금은 TV위에 장식품으로 자리하고있다.


냉장고 자석. PRAHA라고 쓰여있는 것만 골라왔다.
근데 지금 얘네가 어딨는지 모르겠다. (이사 후 분실...;)


또 싼맛에 데려온 아이들. 음... 나는 럭셔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랄까 -_-;
귀걸이들 꽤 맘에 들었는데 또 잃어버렸는지 지금은 없다. 싼건 더 잘 잃어버린다. ㅜㅜ


우리가 빨리 숙소로 돌아왔던 이유는 밤 외출을 하기 위해서였다.
무거운 가방도 숙소에 던져넣고, 나름대로 단장-_-하고 밖으로 나갔다.
프라하에도 라이브카페가 많은데, 음악을 들으며 맥주나 한잔 하자! 라는 멋진 생각에서였다.
피곤함도 잊고, 나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경쾌하고 가벼웠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혀 몰랐으니 -_-



밤에 나온 구시가 광장.


구시가 광장의 틴성당 뒷길 어디라는 길과 주소만 눈으로 대충 익히고 나온 게 화근이었다.
프라하가 네모 반듯반듯한 시가지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구시가는 어두컴컴한데다 뒷골목엔 술집만 가득해서 분위기도 음침.
결국 틴 성당 주변을 뺑뺑 돌았는데도 문제의 재즈바는 발견되지 않았고, 밤은 깊어만 갔다.
겁많은 내 친구는 밤에 나와본걸로 만족하고 숙소에 돌아가자고 했고,
나도 아쉬웠지만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통 숙소에서 구시가 광장으로 나올 땐 표지판에 의존했었고,
돌아올 땐 숙소로 가는 표지판이 당연히 없기 때문에 늘 조금씩 헤맸었다.
지도는 친절하지 않은 편이었고. 그래도 밝을때는 이래저래 헤매다 보면 아는 길도 금새 나오고,
헤매는 걸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었는데- 이건 깜깜하니까 겁도 나고,
좀처럼 아는 길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길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프라하 현지인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꽤나 심각해서,
솔직히 별별생각이 다 들만 했다. 동양인은 관광객임이 틀림없는데다, 현금이 많다는 인식때문에
소매치기나 강도의 표적이 되니까. 게다가 우리는 여자만 두명이었고,
앞서 말했지만 겁많은 내 친구. 표정도 굳은 채 발걸음만 빨라지고 있다.

근데 난 진짜진짜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좀 무모하기도 하지만, 난 그렇게 쉽게 죽거나(?) 해침을 당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아주 강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종교도 없었던 내가
어떤 근거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정말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오히려 1시간도 넘게 길을 헤매면서 무서워하는 친구 몰래, 조금 재밌어 하고 있었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 뭐 이런생각으로

그땐 확실히 이런식으로 운명을 한번 시험해보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여기서 강도당하고 돈 빼앗기고 객사하는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그런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별로 무섭지 않았다. 어찌어찌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가 넘은 시각.
밤길을 3시간이나 넘게 헤맸다는 거다. 뭐 그래도 돌아왔으니 다행!!

캔커피 하나 뽑아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맛있었던 블랙네스카페~
한국에도 블랙네스카페 있었으면 좋겠다. 우유가 빠지고 시럽이 첨가된 맛이었던 듯.


프라하에서의 세번째 아침이 밝았다. 7월 26일.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걸 느끼며 일어났다.
나 살아있구나 아직. -_-


프라하 숙소에서 주는 마지막 아침식사. 참 빈곤하기도 하지. 공짜로 주니까 먹는다만.
빵과 햄과 버터와 홍차와 음료수. 뭐, 낫 배드.


우체국에 들렀다가 은행에 들렀다가.


여전히 예쁘게 눈부신 프라하의 파란 하늘.



by 하치 | 2007/10/01 04:34 | 여행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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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택씨 at 2007/10/05 15:01
혹시나 기종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초저녁의 느낌같은 것은 너무 잘 찍으신 것 같아요.
Commented by 하치 at 2007/10/06 03:39
올림푸스 740UZ 입니다... 그닥 좋은 기종은 아니지요 ㅜㅜ
사실 포토샵의 힘을 조금 빌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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